본문 바로가기
마음의 쓰레기통/감정의 쓰레기통

물감이 번져나가는 듯한 일상 속의 특별한 순간

by 조치훈 2021. 9. 18.
728x90

우연히 만나는 일상 속의 순간이 마음을 데워주는 날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다시피 근처 카페로 나와서 글을 쓰는 와중에 한 어르신이 갑자기 다가오신다. 

 

핸드폰을 내미시며 유튜브에서 김치 만드는 법을 검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셨다.

 

당황스러웠던 마음도 잠시, 키보드 자판 구성을 어떻게 하시는 게 편하신 지 여쭤보다가, 타이핑도 힘드실 것 같아 음성으로 검색하는 법을 알려드리자 매우 만족하시며 돌아가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못내 마음에 걸려 주춤주춤 하다 자리 근처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헷갈려하시고 있는 상황. 한번 더 알려드리니 신기하다며 일행 분들과 해맑게 웃으신다.

 

잠시 뒤에 다른 어르신 한분이 오시더니 핸드폰 지갑을 주섬주섬 뒤적거리셔서 당황했는데, 종이로 된 접종 확인서를 보여주시며 QR체크인으로 접종 확인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카카오톡이 있는 것을 보고 카카오톡으로 해드릴까 여쭤보고, 휴대폰 인증도 해드리고... 무려 1936년 생이셨다. 최대한 개인정보를 보지 않도록 했지만, 무방비하게 다 알려주셔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QR 인증해드리고 방법도 다 알려드렸다. 별거 아니지만, 도와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내 마음에 뿌듯함이 올라왔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문득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르신 두 분이 차례로 고맙다고 손을 흔들며 가시는 데, 마음이 간질간질 채워지며 따뜻해졌다. 혼자만의 일방적인 선행이 아닌, 짧지만 서로에 마음에 따뜻함을 남길 수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보상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오기 전에는 전혀 기대할 수도, 예측하지도 못했던 순간이 때때로 이렇게 일어날 때마다 무채색의 삶에 물감이 떨어져 색이 번져나가는 느낌이다. 

 

오늘의 따뜻함이 뜨겁지는 않더라도 오래오래 간직되길.

728x90

'마음의 쓰레기통 > 감정의 쓰레기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의 입구에서  (6) 2021.09.20
오늘도 수고했어  (6) 2021.09.19
한 여름의 햇살같이 따가웠던 청춘의 기록  (0) 2021.09.17
울음  (0) 2021.09.17
우울  (0) 2021.09.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