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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쓰레기통/기억의 쓰레기통

2018.눈 덮인 겨울날, 무늬. 날 찾아왔던 너를 기억해.(4)

by 조치훈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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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으신 무늬

  • 파국, 그리고 이별

그렇게 사람과 사람 간에도,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도 갈등이 심화되던 걸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던 저는 무늬를 저희 집 본가로 데리고 가기 위해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적 시골에서 외할아버지가 개고기를 먹기 위해 잔인하게 개를 죽이는 걸 본 이후로(옛날 시골에선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잘못된 상식이기도 했고요. 현재의 잣대로 비난을 하는 것은 지양해주시기 바랍니다) 동물들을 두려워하셨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본가에 데리고 올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무늬와 제 친구가 점점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문제를 더 이상 회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정서적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시던 어머니께도 반려동물이 생기는 것이 좋은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라면 두 말없이 안된다고 하셨을 어머니지만, 제 간곡한 말에 깊이 고민해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모를 기대감에 하루가 지나고 나서 어머니는 결국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싫은 것이 아니라 두렵다는 말씀에 더는 저도 뭐라 말씀드릴 게 없더군요. 결국 무늬를 본가로 데리고 오는 것은 무산되었습니다.

 

형제들 곁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안 되는 것이 제가 무늬를 들이고 얼마 안 가 어미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라졌습니다. 고양이 아지트였던 1층 계단 밑도 말끔히 청소가 되었더군요. 아마 집주인이 싹 청소해서 쫓아낸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파국은 찾아왔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방문한 친구의 집. 근데 무엇인가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무늬가 저조차 피하며 구석을 찾아 자꾸 숨었습니다. 친구는 초췌한 몰골로 있었고요. 밤늦게 퇴근한 친구가 잠을 잘 무렵에 한창 야행성 아깽이인 무늬는 놀아달라고 보챘고, 친구는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내가 못 자면 너도 못 자'를 시전 하며 무늬가 학을 뗄 때까지 괴롭혔던 것입니다. 자꾸만 이불 구석으로 숨는 무늬를 보며 그간 제가 없는 시간 동안에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습니다. 친구 또한 당장 치우라며 화를 냈고, 저도 사이코패스라며 친구에게 화를 냈으나 이 광경을 보고도 무늬를 방치할 순 없었습니다. 결국 입양처를 구하겠다며 친구에게 말했고 그때까지 무늬를 건들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최대한 빨리,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입양자를 찾았습니다.

 

여러 문의가 왔었지만 그 중에 고양이 양육 경험이 있고, 현재 기르고 있는 고양이와는 분리되어 생활하고 있어 적합해 보이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기존에 기르던 고양이의 인증샷, 집의 구비 상황들도 다 확인한 후 결정해서 최대한 빨리 보내기로 했습니다. 친구는 며칠 지나 좀 누그러든 상태인 것 같았으나,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고, 결국 입양자와 만나는 날이 왔습니다.

 

입양자가 전철역으로 온다는 소식에 무늬를 안은 채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마지막 순간을 조금이라도 무늬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서요. 아직 추운 날씨에 잠바 안쪽에 안은 채로 가는 동안 찻소리에 흠칫흠칫 놀라긴 했지만, 무늬 또한 무엇인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얌전히 저에게 안겨있었습니다. 그렇게 입양자와 만났고, 집으로 다시 와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 천천히 캐리어에 무늬가 들어간 후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간식으로 꼬시니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가더군요. 멍청한 녀석. 입양자에게 무늬가 쓰던 물품들을 주고 싶었지만, 입양자는 자신이 해주고 싶은지 거절했습니다. 서운하더군요.

 

데려가면서 딱 한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실례지만 지내는 사진을 자주자주 보내달라고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요. 입양자는 알겠다고 하고 실제로 도착한 후에 침대 밑에 숨어 있는 무늬의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입양자에게 받은 무늬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 되었습니다.

 

며칠 뒤에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건강하다는 말과 함께 중성화를 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너무 빠른 건 아닌가 했지만, 이제 무늬는 입양자와 살아야 하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건강하다니 다행이라는 말 밖엔 없었습니다. 그 후론 제가 먼저 연락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싶어서 연락을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그렇게 연락도 사라졌고, 사진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 흐르고 흐르다, 어느 날 입양자의 카톡 프로필에서 매우 역변하여 알아보기도 힘든 머리에 꽃을 꽂은 고양이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매우 역변하여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저만 아는 무늬의 포인트들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입양자와 잘 지내고 있는 무늬의 모습을 그나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임보한 저나, 그저 보기 좋은 마음에 양육하기로 한 친구나 잘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더 잘못했냐는 있겠지만 결국 무늬에게 상처 만주고 말았으니까요. 그나마 좋은 입양자를 만나 잘 지내는 것을 한 번이라도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처음에 도와달라는 그 애처로움 눈을 가진 아이를 끝까지 지켜줄 수 있었더라면, 아니면 그 아이를 구해준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아쉽고 죄스런 생각만 가득합니다.

 

요즘에는 반려인들이 너무나도 흔한 세상입니다. 제가 겪은 바가 있어서 더욱 준비 안된 상태에서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을 안 좋게 바라보게 됩니다. 

 

저는 이 일 이후에 반려동물을 들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앞으로도 글쎄요. 무늬와 같은 특별한 인연이 또 있을까요. 그나마 이 헛헛한 마음을 형 집에 있는 고양이 6마리(!)를 볼 때 해소를 하곤 합니다. 물론 1마리 빼곤 다 도망가지만요.ㅎ

 

저와 무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다소 불편한 이야기를 함께 해주셔서 죄송스럽고 감사합니다.

 

아 제 친구 놈은 사이코패스가 맞으니 맘껏 욕하셔도 됩니다. 저는 좀 덜 욕해주세요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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